2. 인터넷의 역사와 웹표준의 발전

  • 역자들 : 써니, 겨미겨미, 봄눈, 이군, 유자, 호브레드, 혜윰, 비티, detective

소개

“제가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페하?”

“처음부터 시작하라”

왕이 엄중하게 말했다. “그리고 당신이 끝에 이를 때까지 계속하라: 그 다음 중지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루이스 캐럴

모든 것은 어디선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여행은 역사를 중심으로 시작될 것이다. 아래에서 나는 당신에게 인터넷, 월드 와이드 웹의 짧은 개요을 설명할 예정인데, “웹표준”에 전체 시리즈의 촛점이 맞춰져 있다. 나는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 이해하는 게 유용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질리지 않고 세부사항으로 만족스럽게 그리고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충분히 짧게 기술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있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만약 그게 웹 개발 학습에 중요한 경우는, 각 주제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바로 다음 글에서 용어정의가 있을 것이고, 또한 언제나 Google 검색을 할 수 있지 않은가! 당신이 인터넷 또는 월드 와이드 웹의 역사에 이미 익숙하다면, 부담없이 웹 표준 부분으로 넘어가도 무관하다. 이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터넷의 기원

1957년 10월 4일 세상을 바꾸는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소비에트연방은 사상 최초로 지구 궤도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것이다. “스푸트니크 1호”라고 불리는 인공위성은 세상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특히, 미연방의 인공위성 발사 프로그램의 연구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현재의 요구보다 진보된 아이디어와 기술을 연구 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필요를 인정하게 함에 따라, ARPA(th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라는 기관을 설립하게 했다. 아마 그들의 가장 큰 발명은 인터넷일 것이다.

1960년에 심리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Joseph Licklider는 진보된 정보의 저장과 정보검색을 제공하는 네트웍 컴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Man-Computer Symbiosos(인간과 컴퓨터의 공생관계)”라는 논문을 발행했다. 1962년, 그는 ARPA에서 정보처리연구실의 팀장으로 일하는 동안 그는 나중에 컴퓨터연구를 하게 되는 그룹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그 아이디어에 대한 실제적인 일을 하기 전에 그 그룹을 떠났다.

이 컴퓨터 네트웍에 대한 계획(“ARPANET”이라 불리는)은 1967년 10월에 소개 되었고, 1969년 12월에 처음으로 네 개의 컴퓨터 네트웍이 작동되었다. 네트웍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어떻게 하면 지속적인 연결을 위해서 네트워크 자원을 묶어두지 않고도, 각각의 독립된 물리적인 네트웍을 연결하느냐 였다. 그 문제는 패킷 스위칭이라고 알려진 기술에 의해서 해결 되었다. 이 기술은 담겨진 데이터를 작은 덩어리로 나눌 것을 요청하였고, 이것은 다른 작은 입자들에 의해 막혀짐이 없이 빠르게 전송될수 있었다 –이 원리는 아직까지 인터넷에 사용된다.

이 개념은 아주 넓게 받아들여졌고, 이 기술을 사용하는 다른 네트웍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예를 들어 처음에 UK 대학 네트웍 JANET의 기본을 구성하는 X.25라던가, The American public network CompuServe등이었다. 이들 네트웍은 많은 커넥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인터넷보다 더욱 배타적이었다.

이 각기 다른 네트워킹 프로토콜의 급증은 모든 분리된 네트웍 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려 했을 때, 문제를 야기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직관적인 해결책이 있었다 – Robert Kahn이 ARPA에서 인공위성 패킷 네트웍 프로젝트를 할 때, 당시 ARPANET에서 쓰는 프로토콜을 대체하는 더욱더 개방된 네트워킹 구조의 규칙에 대한 정의를 시도했다. 후에 참여한 스텐포드 대학의 Vinton Cerf와 함께 새로운 기준을 이용해서 네트워킹 프로토콜 사이의 차이점을 덮어주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1974년 12월 명세의 초안에서, 이것을 “인터넷 전송 제어 프로그램(Internet Transmission Control Program)”이라고 불렀다.

이 명세는 네트워크의 역할과 호스트 컴퓨터의 지속적인 전송 무결성의 책임을 감소시켰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거의 모든 네트워크가 쉽게 결합되는 가능성을 갖게 했다. ARPA는 그 소프트웨어 개발에 자금을 댔고, 그리하여 1977년에 3개의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통신을 수행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시연했다.1981년에는 명세가 완성되어 공개되고 적용되었다. 그리고 1981년 ARPANET의 미국 바깥으로의 연결은 개조된 새로운 “TCP/IP” 프로토콜로 바뀌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인터넷은 찾아왔다.

월드 와이드 웹의 탄생

고퍼(Gopher)는 1990년대초에 사용되던 파일, 컴퓨터 리소스, 그 밖의 메뉴들로의 링크를 전달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정보 복구 시스템이다. 이 메뉴들은 각각의 컴퓨터의 한계를 넘어 인터넷을 사용하여 다른 시스템들로부터 메뉴를 가져올 수 있었다. 고퍼(Gopher)는 대학교에서 캠퍼스 전체의 정보를 다루는 상황이나 커다란 조직에서 문서 저장소와 관리를 중심으로 모으는 상황에 매우 대중화된 것이었다.

[[http://www.terms.co.kr/Gopher.htm|고퍼(Gopher)]]는 미네소타 대학에서 제작되었다. 1993년 2월, 그들은 고퍼(Gopher) 서버의 그들의 참고 구현을 사용하는 경우 라이센스 비용을 부과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많은 기관들은 고퍼(Gopher)의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스위스의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는 비슷한 대안이었다.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는 정보 관리 시스템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는 텍스트가 다른 결과물로의 링크와 참조를 가질 수 있는 구조로서, 읽는 이가 문서와 문서 사이를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그는 하이퍼텍스트라고 불리던 이 스타일의 문서를 배포할 서버를 만들었고 그것들을 읽을 수 있는 프로그램 또한 만들었다. 그는 그 프로그램을 “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이라고 불렀다. 이 소프트웨어는 1991년에 처음 배포되었는데, 두 가지 사건으로 대중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고퍼(Gopher)를 대체하게 되었다.

1993년 4월 30일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월드와이드웹(WorldWideWeb)의 소스 코드를 일반에 배포하였다. 그리하여 모든 이들은 비용 없이 사용하거나 소프트웨어 제작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해의 늦은 시점에, 미국 국립 수퍼컴퓨터 활용센터 (NCSA)에서 모자이크(Mosaic)라고 하는 웹 브라우저와 고퍼(Gopher) 클라이언트를 결합시킨 프로그램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원래 유닉스(Unix) 기기에서만 소스 코드 실행을 통해 사용할 수 있었는데, 1993년 12월 모자이크(Mosaic)애플 매킨토시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용 인스톨러와 함께 새 버전으로 제공되었다. 모자이크(Mosaic)는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으며, 웹(Web) 역시 그것과 함께 했다.

사용 가능한 웹 브라우저의 수가 극적으로 증가하였고, 많은 브라우저들이 대학교들과 연구기관들의 연구 프로젝트로 탄생되었다. 예를 들어 노르웨이의 통신 회사인 Telenor에서 1994년 오페라(Opera) 브라우저의 첫번째 버전을 제작하였다.

브라우저 전쟁

웹의 대중화는 상업적인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NCSA를 떠난 Marc Andreessen은 Jim Clark와 함께 Mosaic Communications의 기초를 세우고(Mosaic Communications는 후에 Netscape Communications Corporation로 이름을 바꾸었다) Netscape Navigator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 소프트웨어의 버젼 1.0은 1994년 12월에 출시되었다.

Spyglass Inc.(NCSA의 상업적 파트너)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기본을 형성하는 Microsoft에 대한 그들의 모자이크기술을 허가했다. Version 1.0는 1995년 8월에 출시되었다.

특색적인 측면에서 Netscape와 Microsoft가 서로 경쟁을 통해 우위에 서려고 노력함과 함께, 단계적인 확대가 곧 이루어지면서 그들은 개발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은 브라우저 전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간동안 Opera 브라우저는 작은 규모이지만 안정적인 존재로써 유지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최대한 웹의 수준을 유지하고 혁신하려고 노력하였다.

관련 정보 : http://media.daum.net/economic/industry/view.html?cateid=1038&newsid=20080229215109163&p=akn (출처 : 다음뉴스)
NCSA란?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 ) 과학적 지식의 공유를 위해 첨단 기술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목표로 연방정부기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다.

웹 표준의 도래

브라우저 전쟁동안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네스케이프는 그들이 이미 지원하고 있던 기능들의 문제를 고치기보가 새로운 기능을 구현하는 것에만 집중했다.그리고 추가된 소유자 기능과 새로운 기능들은 다른 브라우저들이 이미 담고 있는 기능들과 직접 경쟁을 했다.

당시 개발자들은 사이트를 구축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혼란에 대처하는 힘을 갖게 되었는데, 때때로 두가지의 서로 다른 구축 범위(방법)는 두 개의 주 브라우저에서 사이트들이 똑같이 보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오직 하나의 브라우저만을 지원하는 것을 선택강요함으로써 사이트를 이용하는데 다른 브라우저를 제한했다. 이것은 두려운 작업이었고, 멀지 않아 개발자들로부터의 반발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W3C의 위치

1994년, 팀 버너스리는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고등방위연구계획국 DARPA (나중에 ARPA이름이 바뀐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지원으로 ‘월드 와이드 웹 컨소시움'(W3C)을 창립하였다. W3C의 목표는 가능한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컨텐츠를 이용할수 있도록, 웹을 만드는 프로토콜과 기술을 표준화하는 것이었다.

이후 몇 년동안, W3C는 HTML4.0, PNG 이미지를 위한 형식, 그리고 Cascading Style Sheets 1과 2버전을 포함한 여러 종의 설명서(“권고안”라 불리는)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W3C는 권고안를 강요하지 않는다. 생산자가 만일 제품에 W3C-규격을 표시하기 원한다면, W3C 지침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거의 모든 웹사용자가 W3C가 뭔지 모르고, 알아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규격표시로 돈되는 판촉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브라우저 전쟁은 계속 수그러들지 않았다.

웹 표준 프로젝트

1988년에 브라우저시장은 Internet Explorer 4 와 Netscape Navigator 4에 의해 지배되었다. Internet Explorer 5 베타 버전이 출시됐을 때, 새롭고 독점적인 동적 html이 실행되었다. 이것은 자바스크립트를 쓰는데 5가지의 다른 방법이 전문 웹개발자들에게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전문 웹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이 함께 그룹으로 단결되었다. 이 그룹은 “웹표준 프로젝트”(WaSP)라고 칭했다. 이 아이디어는 W3C 표준 문서 보다는 권장사항으로 불렸고, 그들은 Microsoft와 Netscape 가 그들을 지원하게 확신시켜야했다.

전화 확산의 빠른 방법은 “roadblock”이라고 불리우는 고전적인 광고기술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어느 회사의 같은 시간에 모든 방송 채널에 광고가 되고, 그래서 채널 사이에 휘둘릴 걱정없이 시청자들은 정확히 같은 메시지를 받게된다.
WaSP은 builder.com을 포함하여 Wired online 그리고 일부 인기있는 메일링리스트 사이트등 동시에 여러 웹 개발에 초점을 맞추어 논문을 출판하였다.

그들이 사용한 또 다른 방법은 W3C(그리고 다른 표준화 기구)에 참여하려는 회사들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처음에 고치려고 등록했던 기본적인 것들에 주목하기보다 새로운 기능 창조에 주목하였다.

이 모든 것이 조금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WaSP는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또한 도움도 주었다.
일곱 멤버가 “CSS Samurai”를 결성하고, Opera와 Internet Explorer 상에서 CSS 지원과 관련된 최우선 과제 10개를 확인해 주었다. (Opera는 그 문제점을 수정하였지만 Internet Explorer는 그렇지 않았다.)

떠오르는 웹 표준

2000년도에, 마이크로소프트사는 매킨토시용 인터넷 익스플로러 5를 출시했다.
이것은 중요한 이정표적 사건이었으며, 그 당시에는 설치된 Mac-OS의 기본브라우저가 되었고, W3C권고사항을 충분히 지원하는 수준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맥용 IE5 출시는 CSS과 HTML에 대한 오페라의 최신의 지원에 맞춰, 처음으로 웹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웹표준을 준수하는 사이트를 디자인하는것에 대해서 편안함을 느낄수있게하는등의 긍정적 흐름에 기여하였다.

WaSP는 충분히 표준을 지원할때까지 넷스케이프 네이게이터의 5.0버전 출시를 연기시켰다 (이것은 가장 대중적인 브라우저인 FireFox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WaSP는 또한, “드림위버 전담팀”을 구성하여 표준을 준수하는 사이트제작을 독려하고 지원하기위한 대중적 웹저작툴을 바꾸도록 Macromedia를 지원하였다.

대중적인 웹개발사이트인 “A List Apart”는, 2001년초에 새롭게 디자인되었으며 방법과 이유에 대해서 문서에 기술되어 있다:

6개월, 1년, 혹은 거의 2년이내에 모든 사이트는 이러한 표준에 의해서 디자인 될것이다.[..중략..] 우리의 오래된 기술이 쓸모없게 되는 것을 보거나 표준에 기초한 기술을 배우는 것을 지금 시작한다.

2008년까지도 모든 사이트가 웹표준에 준수해서 구성되지 않았기에 그것은 어느정도 낙관적이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청했다. 구식 브라우저들은 시장에서 도퇴되어갔으며, Wired magazine, ESPN등의 두개의 대형 사이트가 각각 2002년도와
2003년도에 웹표준과 새로운기술에 대한 지원으로 이분야의 리더가 되었다.

또한 2003년에는 Dave Shea가 “CSS Zen Garden”로 불리는 사이트를 출범하였다. 이것은 전체 디자인이 페이지의 스타일만을 변경함으로써 수정되어 질수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그 어떤 것보다 웹전문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내용은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그 이후, 전문 웹 개발 커뮤니티에서 웹 표준에 절대적 필요 조건이되고 있다.
본 시리즈에서, 우리가 이러한 기술의 훌륭한 기반지식을 제공함으로써 대규모기업처럼 명쾌하고 의미있고 접근가능하며 표준에 입각한 웹사이트를 개발할수 있다.

요약

이 문서에서 인터넷을 검토한 현대적인 방법의 공간을 만들었 레이스의 결과로, 팀 버너스-리 정의하는 방법을 하이퍼 텍스트 생성하고 상업적인 이익을하는 방법 중 하나를 두 회사 원인 대부분의 주목할만한 개발자 반발을 본 적이있습니다. 라는 용어 “웹 표준”은 이제 더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는 웹 전문의는 모든 w3c(w3c가 시작 사실이 용어를 자신의 페이지를 사용하여), 이것이 우리가 갈 가르쳐 – 표준 방법이 웹 사이트를 구축합니다.

더 읽을거리

더 고민할 것들

더 연구하고 싶은 것들:

  • 윈도우즈, 맥OS, 리눅스의 사용들을 위해 어떤 브라우저가 유용한가?
  • 각각의 브라우저 점유율은 어떠한가?
  • 모바일 장치는 웹페이지에 접근할 때 어떤 브라우저를 사용하는가?
  • W3C는 얼마나 많은 ‘웹 표준’을 공개했고, 브라우저 제조사에 의해서 폭넓게 지원되고 있는가?

저자에 대해서

Mark Norman Francis는 웹이 발명되기 전부터 인터넷에서 일을 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Yahoo!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웹사이트를 위한 Front End Architect로, 최상의 방법을 정의하고, 국제적인 웹개발의 표준과 품질을 만들(Coding)었다.

Yahoo! 이전에 그는 Formula One Management에서 일했다, Purple Interactive와 City University에서 웹 개발에 포함되는 각종 규칙을 만들고, CGI 프로그래밍과 시스템 설계를 했다. 그는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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